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도 상속 대상이 될까? 한국 법률과 해외 사례 비교로 보는 21세기 상속의 새로운 기준

withallmyheart-n 2025. 6. 27. 09:00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상속되는 것은 예전에는 단순했다. 부동산, 예금, 자동차, 주식 같은 물리적 자산만 정리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수십 개의 온라인 계정을 사용하며, 그 안에 사진, 영상, 문서, 콘텐츠, 암호화폐, 수익 계좌까지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비물질적 자산, 즉 디지털 유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성되고 있고,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로 이 디지털 유산이 정말로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 블로그에 남긴 저작물, 구글 드라이브에 보관한 문서,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가족사진, 비트코인 지갑에 보관된 가상 자산 등은 법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와 상속 기준이 불완전하고 불명확하다. 해외에서는 점차 디지털 유산을 상속의 한 영역으로 인식하고 제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명확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이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한국 법률과 주요 해외 사례를 비교하여 현황과 문제점, 앞으로의 방향을 살펴본다.

디지털 유산도 상속 대상? 사례 비교를 통한 상속의 새로운 기준

디지털 유산의 정의와 한국에서의 법적 위치

디지털 유산이란 사망한 사람이 남긴 디지털 기반의 자산을 말한다. 그 범위는 매우 넓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있다.

  • 이메일, SNS, 블로그 등 온라인 계정
  • 유튜브,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의 콘텐츠와 그로 인한 수익
  • 구글 드라이브, 아이클라우드 등 클라우드에 저장된 파일
  • 암호화폐, NFT, 디지털 금융자산
  • 온라인 쇼핑몰 포인트, 게임 아이템, 유료 구독 서비스 등

이 중 일부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실질적인 금전적 가치가 있는 자산이다. 예를 들어 매월 애드센스 수익이 발생하는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은 명백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민법은 이러한 디지털 자산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한국 민법 제1005조에서는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개시되고, 그 재산에 관한 권리·의무는 상속인에게 이전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기준으로 보면 디지털 자산도 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지만, 디지털 정보의 특성상 ‘접근성’과 ‘소유권’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가족이 유튜브 채널을 상속받고 싶어도 구글 계정 비밀번호나 인증 수단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플랫폼 측도 사망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계정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법원의 명령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상속이 인정되더라도, 기술적으로 상속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결국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이 상속 가능한 자산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법적 공백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빠르게 디지털 유산을 법제화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로는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있다.

미국에서는 2015년 ‘RUFADAA(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라는 모델 법안을 통해 디지털 자산 상속의 기준을 마련했다. 이 법안에 따라 사망자는 생전에 특정인을 디지털 자산 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고, 이 관리자가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현재 미국 50개 주 중 대부분이 이 법안을 채택하여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법원 판례를 통해 “페이스북 계정도 상속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15세 딸을 잃은 부모가 페이스북 측에 딸의 계정 접근을 요구했고, 법원은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일기장이나 편지와 같은 성격을 지니므로 상속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독일에서는 디지털 유산이 민법상 상속 대상에 포함된다는 해석이 일반화되었다.

일본은 최근 ‘디지털 상속 가이드라인’을 정부 차원에서 발표하며, 디지털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보되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과 내용물의 처리 권한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는 상속인이 소유권을 가지되, 복구 키가 없다면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생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주요 국가들은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실질적인 처리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관련 법률이 미비하고, 법원 판단이나 기업 정책에 따라 접근 가능 여부가 좌우되는 불안정한 상태다.

 

한국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방법

한국에서 아직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법률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개인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준비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요 계정의 목록과 용도를 정리해두자.
어떤 이메일을 사용하는지, 블로그나 유튜브는 어떤 계정에 연결되어 있는지, 암호화폐 지갑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등을 문서화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목록은 엑셀, 구글 문서, 노션 등으로 작성할 수 있고, 필요 시 암호를 걸거나 USB로 보관하면 된다.

둘째, 각 플랫폼의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을 활용하자.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 애플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 기능을 통해 사망 후 계정을 삭제하거나 타인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생전에 이 기능들을 설정해두면, 법적인 분쟁 없이 가족에게 계정을 넘겨줄 수 있다.

셋째,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항목을 포함하자.
한국에서는 유언장이 공증되었거나 법적 요건을 갖추면 강력한 상속 기준이 된다. 이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항목을 포함시켜, 어떤 계정이나 자산을 누구에게 넘기고 싶은지, 어떤 콘텐츠는 삭제해줬으면 하는지 등을 명시해두면 분쟁을 줄일 수 있다.

넷째, 비밀번호 공유 대신 복구 힌트를 제공하자.
직접적인 비밀번호 공유는 보안상 위험할 수 있으므로, 복구 이메일, 백업 인증 앱 위치, OTP 백업 코드 등을 정리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 가족이 최소한의 접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준비는 법제화가 완성되기 전까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이다. 디지털 유산은 앞으로 상속의 핵심 이슈가 될 것이며, 준비하지 않으면 자산의 가치뿐 아니라 삶의 기록과 기억까지 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