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유서를 종이에만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이제 스마트폰과 노트북 속, 그리고 수십 개의 온라인 계정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사진첩은 클라우드로 대체되었고, 메모장은 노션이나 구글 킵으로 바뀌었으며, 편지 대신 카카오톡과 이메일이 남아 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는 내 생각과 기록이 축적되어 있고, 암호화폐 지갑 안에는 실질적인 자산이 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디지털 유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디지털 유산이 사망 후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산이 남아 있더라도 가족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디는 알아도 비밀번호를 모르고, 설령 비밀번호를 알아도 2단계 인증이 막아선다. 구글, 애플, 메타, 카카오 등 거의 모든 플랫폼은 보안상 사망자의 계정 접근을 제한하며, 법원 명령서나 공증 서류 없이는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이렇게 방치된 디지털 자산은 결국 가족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봉인된 자산, 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되는 사라지는 유산이 되고 만다. 나는 살아 있을 때 그 자산들을 만들었지만, 내가 떠난 뒤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결국 책임 없는 유산이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직접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다음에서 소개할 다섯 가지 습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망 후 가족의 혼란을 막아주는 가장 강력한 준비가 된다.
계정 정리와 데이터 백업은 디지털 유산의 가장 기본적인 준비
첫 번째 습관은 내가 사용하는 계정을 목록화하고 정리해두는 것이다. 누구나 여러 개의 이메일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SNS, 클라우드, 금융 앱, 콘텐츠 플랫폼까지 더하면 평균적으로 50개 이상의 계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죽은 후 가족은 내가 어떤 계정을 쓰고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당연히 접근도 어렵다.
계정을 정리할 때는 꼭 비밀번호까지 적을 필요는 없다. 간단하게 서비스명, 아이디(이메일), 용도, 연동된 계정 정보만 메모장이나 엑셀, 노션 등에 정리해두는 것만으로도 유족 입장에서는 출발점을 확보하는 것이 된다. 이 문서는 인쇄해서 금고에 넣어두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USB로 전달해두면 된다.
두 번째 습관은 중요한 데이터는 반드시 이중 백업하는 것이다. 사진, 영상, 녹음 파일, 자필 유언장 스캔본, 거래 내역, 가족과의 추억 등이 클라우드 하나에만 저장되어 있다면 매우 위험하다. 사망 후 해당 계정에 접근하지 못하면 그 자료는 영영 사라질 수 있다. 구글 포토, 아이클라우드, 네이버 MYBOX 등에 저장된 자료는 정기적으로 외장 하드, 다른 클라우드, 또는 가족이 접근 가능한 USB 등에 백업하는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건, 이런 정리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 10분만 투자해서 계정 리스트를 만들고, 중요한 파일 몇 개만 다른 저장소에 복사해도, 가족은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사후 계정 설정 기능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예방책이다
세 번째 습관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사후 계정 설정 기능을 반드시 활용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플랫폼에서 이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설정도 간단하다.
예를 들어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능은 일정 기간 동안 로그인이 없을 경우, 내가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계정 데이터를 전달하거나, 자동으로 계정을 삭제해 주는 설정이다. 가족이나 지인 이메일을 등록해두고, Gmail, 구글 포토, 유튜브 등 어느 데이터까지 넘길지 선택하면 끝이다. 단 몇 분이면 설정이 완료된다.
애플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 기능을 통해, 내가 사망한 후 미리 지정해둔 가족이 내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메모, 연락처, 문서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망진단서와 액세스 키만 있으면, 복잡한 절차 없이 유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단, 사전에 연락처를 지정해두지 않으면 이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 전환 기능을 제공한다. 생전에 유산 연락처를 지정해두면, 가족이 내 사망 후 프로필을 유지하면서 간단한 편집(프로필 고정 글, 친구 요청 수락 등)을 할 수 있다. 반면 지정하지 않으면, 삭제 요청만 가능하고, 내 콘텐츠는 남지 않는다.
이처럼 주요 플랫폼은 사망자 계정 처리를 위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이 기능들은 반드시 사망 전에 본인이 설정해야 한다. 아무 조치 없이 사망하면, 가족은 어떤 플랫폼에서도 내 계정을 복구하거나 열람할 수 없다. 이 몇 분의 설정이, 훗날 가족이 눈물 흘리지 않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산 정리 문서 작성과 가족과의 대화가 마지막 습관이다
네 번째 습관은 디지털 유산 정리 문서 작성하기다. 이 문서는 앞서 만든 계정 목록을 포함해, 어떤 계정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는지, 복구 이메일은 무엇인지, 2단계 인증이 설정돼 있는지, 혹시 백업 코드나 OTP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문서는 유언장처럼 법적 효력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정리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다섯 번째 습관은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다.
어떤 계정은 유지해 주었으면 좋겠고, 어떤 자료는 삭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의사를 가족에게 생전에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은 고인의 뜻을 따라 정리할 수 있고, 불필요한 감정적 갈등도 피할 수 있다.
특히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콘텐츠 기반의 수익이 발생하는 디지털 유산은 상속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생전에 누가 관리하고 수익을 가져가야 하는지도 간단히 정리해두면 좋다.
결국 디지털 유산 정리는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나와 가족 간의 신뢰와 소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내 계정을 누구에게 어떻게 넘기고 싶은지, 사진과 메모를 누가 봐도 괜찮은지, 유튜브 채널은 삭제할지 유지할지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의사를 짧게라도 말해두는 것이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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