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부모님·조부모님의 디지털 유산: 내가 대신 계정 정리한 실제 이야기

withallmyheart-n 2025. 6. 28. 15:09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기는 것은 단순한 유물이나 통장만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양한 온라인 계정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사진, 영상, 문서, 금융정보, 심지어 수익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자산을 우리는 디지털 유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디지털 유산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해 가족이 혼란을 겪거나, 소중한 기록과 자산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나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망 이후, 그분들이 남긴 각종 온라인 계정과 디지털 자산을 대신 정리하는 일을 직접 경험했다. 유언장도 없었고, 사전에 계정 정보를 공유한 적도 없었기에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몰랐다. 네이버, 구글, 애플, 카카오 같은 주요 플랫폼부터 시작해 휴대폰에 저장된 메모, 클라우드 사진, 구독 서비스 해지, 금융앱과 쇼핑 앱까지 하나하나 열어보는 과정은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감정적으로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 글은 내가 실제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디지털 유산 정리를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점에서 어려웠고,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며, 왜 생전에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한지를 공유하기 위해 작성한다.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작은 팁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가족의 디지털유산, 내가정리한 이야기

계정 하나가 닫히지 않아 가족 전체가 고생한 사연

먼저 조부모님의 사례부터 이야기해보자. 조부모님은 80대이셨고,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진 않았지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간단한 금융 앱과 공인인증서를 통해 생활비 이체를 직접 하셨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문제를 겪은 것은 카카오톡 계정이었다. 스마트폰을 초기화해야 했지만, 카카오톡 계정 비밀번호를 알 수 없었고, 본인 인증도 불가능했다. 결국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본인만 해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계정은 6개월 이상 비활성화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삭제되지만, 그 안의 대화 내용이나 사진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부모님의 구글 계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생전에 부모님은 유튜브를 자주 보셨고, 구글 포토에 사진도 많이 업로드하셨다. 특히 구글 드라이브에는 사업 관련 문서와 주민등록등본, 계약서 스캔본이 저장돼 있었는데, 문제는 이 계정이 2단계 인증으로 보호되어 있었고 백업 인증 수단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유언장도 없고, 구글 ‘비활성 계정 관리자’ 설정도 되어 있지 않아서 결국 그 중요한 자료들은 그대로 열지 못한 채 남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단순히 비밀번호만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요즘 대부분의 서비스는 2단계 인증을 필수로 요구하고, 생체 인식, 문자 인증, 인증 앱 연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안이 걸려 있다. 사망자의 신분증이나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도, 많은 플랫폼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접근을 거부했다. 계정 하나가 닫히지 않아서, 가족 전체가 오랜 시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상황을 직접 겪었다.

 

디지털 유산에는 감정과 기억도 함께 담겨 있다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순간은 조부모님의 클라우드 앨범을 열지 못했을 때였다. 그 안에는 우리 가족과 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 손자 손녀의 성장 사진, 직접 찍은 꽃 사진이 가득 있었다. 모두 아이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있었고, 스마트폰은 초기화 상태였기 때문에 사진은 복구할 수 없었다. 애플 고객센터에 문의해봤지만, ‘디지털 유산 연락처’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의 명령 없이는 절대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만 받을 수 있었다. 결국 그 사진들은 열어보지 못한 채, 영구 삭제를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디지털 유산이 단지 재산이나 수익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삶의 기록이고, 감정이고,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단지 계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실제로 부모님의 블로그도 정리해야 했는데, 거기에는 우리 가족의 일상과 생각, 여행 후기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블로그는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글들은 PDF로 백업했다. 이런 과정은 법적으로 복잡하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직접 정리해보니, 생전 준비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내가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디지털 유산을 직접 정리해본 결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생전에 조금만 준비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더라도, 어떤 계정을 사용하고 있는지 정도만 목록으로 남겨주었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이 제공하는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을 미리 설정해두었더라면 가족이 접근 권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지정’ 같은 기능은 몇 분만 투자하면 설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정리 경험이 끝난 후 나는 내 계정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구글, 네이버, 애플, 유튜브, 카카오, 메타, 암호화폐 지갑 등 내가 사용하는 모든 계정을 한 줄씩 정리하고, 복구 이메일, 사용 용도, 수익 여부, 연동된 서비스, 중요도, 특이사항을 기록했다. 비밀번호는 적지 않았지만, 복구 방법과 인증 앱 종류, 백업 코드 보관 위치 정도는 함께 정리했다. 그리고 이 파일을 암호화해서 USB에 담아 두고, 가족에게 "내가 죽으면 금고 속 USB를 찾아보라"고 전달했다. 사망을 전제로 한 준비는 마음이 무겁지만, 이 작업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