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개인정보보호법과 디지털 유산의 충돌: 현실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withallmyheart-n 2025. 6. 28. 06:00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남긴 물리적 자산은 상속 절차를 거쳐 가족에게 넘어간다. 집, 예금, 자동차, 심지어 골동품까지 법적으로 명확한 기준에 따라 상속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남기게 되는 디지털 유산, 즉 온라인 계정, 클라우드 데이터, 유튜브 채널, 이메일, 블로그, SNS, 암호화폐 등은 사정이 다르다.

이런 디지털 유산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가족이 열어볼 수 없고, 삭제도 하지 못하며, 심지어 수익이 있어도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개인정보보호법이 살아 있는 사람뿐 아니라 사망자에게도 일정 부분 적용되기 때문이다.

유족이 고인의 구글 계정, 아이클라우드, 네이버 메일, 카카오톡 대화 내역 등에 접근하고 싶어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플랫폼 측은 계정 접근이나 데이터 열람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망자의 사진, 메모, 수익, 기록들이 고스란히 디지털 무덤에 갇히고 만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려는 유족과 이를 막는 개인정보보호법 사이의 법적 충돌,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과 대안을 함께 살펴본다.

개인정보보호법과 디지털유산 충돌, 현실적 해결책은?

개인정보보호법은 왜 디지털 유산 정리를 막는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해당 법은 사용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며, 사용자의 생전 정보뿐 아니라 사망자의 정보도 일정 부분 보호 대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은 책임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사망자 계정에 대한 접근 요청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접근이 거부된다.

  • 명확한 동의(사망 전 사용자)가 없으므로 열람 불가
  • 비밀번호 및 인증 수단 제공은 위법 소지 있음
  • 계정 정보는 본인만의 권한이므로, 소유권 이전 불가
  • 플랫폼 약관상 사망 시 계정은 폐쇄 대상임

예를 들어 구글은 가족이 요청하더라도, 사망자의 계정 비밀번호나 메일 내용을 제공하지 않는다. 애플도 아이클라우드 접근을 원할 경우, 반드시 생전에 ‘디지털 유산 연락처’로 지정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법원의 명령 없이는 열람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개인정보보호법은 원래 살아 있는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만 사망 후 디지털 유산 정리를 원활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 결과 가족은 소중한 데이터와 자산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유족의 고통, 디지털유산 상속의 법적 공백

실제로 이런 충돌로 인해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가족의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한 예로, 2022년 부산에서는 암으로 사망한 40대 여성의 남편이 아내의 아이클라우드 계정에 접근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계정에는 가족사진 수천 장과 자녀의 성장기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고 애플 측은 유언장, 사망진단서, 법원의 결정문이 있어야만 열람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남편은 법적 절차를 포기했고, 해당 자료는 영구 봉인 상태로 남게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구글 애드센스를 통한 유튜브 광고 수익 상속 문제가 있다.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남성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월 200만 원가량의 수익을 벌고 있었지만 사망 후 가족은 해당 구글 계정에 로그인하지 못했고, 구글은 “사망자 계정 접근은 유언장 또는 법원 명령이 없는 한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수익은 정산되지 못했고, 몇 개월 후 해당 채널은 활동 중단으로 인해 알고리즘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계정 문제를 넘어 디지털 유산이 실질적인 경제 자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공백과 보호법의 충돌로 인해 사망자의 의사도, 가족의 권리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매우 엄격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플랫폼들도 이를 바탕으로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는 가족의 요청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입장에서 아무리 중요한 자료나 수익이 걸려 있어도, 사망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계정을 열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법적·기술적 충돌 속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해결책은, 각 플랫폼이 제공하는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을 반드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비활성 계정 관리자)'라는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일정 기간 계정을 사용하지 않으면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를 넘기거나 계정을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 기능을 활성화하면, 사망 이후에도 가족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디지털 유산에 접근할 수 있는 공식적 권한을 얻게 된다.

애플 역시 비슷한 기능을 제공한다. ‘디지털 유산 연락처(Digital Legacy Contact)’라는 시스템을 통해, 내가 생전에 지정한 사람이 사망 이후 내 아이클라우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진, 메모, 문서, 연락처 등 중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유산을 남기고 싶다면 꼭 이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페이스북도 '추모 계정' 기능을 제공하며, 사망자 계정을 유지하거나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두 번째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디지털 유산 관련 내용을 유언장에 명확히 포함시키는 것이다.
유언장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문서가 아니라, 내 사망 이후 어떤 자산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넘기고 싶은지에 대한 내 의사를 공식화하는 문서다. 디지털 유산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구글 계정(gmail@gmail.com)에 연동된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와 수익은 장남에게 상속하며, 관리 권한 역시 동일하게 위임한다”는 문장을 유언장에 포함시키면,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법원이나 플랫폼에 공식 요청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유언장이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필 유언장 형식이거나 공증 유언장 등, 법적 요건을 갖춘 형태로 작성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공인인증된 디지털 유언장 서비스도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세 번째는, 계정 목록과 수익 구조를 정리한 ‘디지털 유산 정리 문서’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이메일을 사용 중인지, 어떤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지, 그 채널이 어떤 수익 구조를 갖고 있는지 등을 정리한 문서를 생전에 작성해 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비밀번호까지 직접 기재하긴 어렵지만, 계정 아이디, 복구 이메일, 사용 플랫폼, 2단계 인증 여부, 수익 지급 계좌 등 가족이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 정리해두어도 큰 도움이 된다. 이 문서는 인쇄해 금고에 넣거나, 암호화된 USB에 저장해두는 방식으로 보관하면 안전하다.

마지막 해결책은, 사회적 인식 전환과 법제도 개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유산을 상속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RUFADAA(디지털 자산 접근권 균일법)’를 통해 법적으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지정된 상속인에게 이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고, 독일은 판례를 통해 페이스북 계정도 상속 대상으로 인정했다. 일본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행정지침을 발간하며 정책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유족과 플랫폼 사이에 끊임없는 마찰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와 입법기관이 나서서 디지털 유산 상속 관련 법안을 정비하고,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속법 간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중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인의 삶이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시대, 사망 이후 남겨지는 온라인 흔적들은 그저 삭제되는 정보가 아니라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유산이자 자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의 준비와 함께, 사회적 시스템도 이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