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죽음 이후에도 남는 디지털 유산, 정리를 통해 돌아본 내 삶

withallmyheart-n 2025. 6. 30. 13:00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집, 땅, 통장’ 같은 물리적인 자산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된 지금, 개인이 남기는 유산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메일, 사진, 메모, 소셜미디어 계정, 클라우드 파일 등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고, 죽음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나 하나 이상의 SNS 계정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문제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 계정들은 그대로 인터넷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노출되거나, 가족에게 예기치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진행한 디지털 유산 정리 과정을 통해 어떤 점들을 느꼈는지, 그리고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정리해본다. 단순한 계정 삭제가 아니라, 내 삶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과정이 어떻게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디지털 유산 정리를 통해 돌아본 내 삶

정리를 시작하며 마주한 ‘잊고 있던 나의 기록들’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겠다는 결심은 어느 날 문득 찾아왔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이 사진들은 내가 죽은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계기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계정과 저장소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데이터들이 내 일상에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구글 드라이브에는 과거 이력서,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 초안, 백업 된 일기 파일이 있었고, 아이클라우드에는 여러 해 동안 찍은 여행 사진과 메모가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미 잊어버린 인연과의 댓글, 내가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유튜브 댓글에서도 참여했던 대화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되돌아보니, 그 안에는 그때의 내 감정, 관계,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단순히 정리나 삭제를 넘어서 내가 어떤 시간들을 살았는지를 조용히 되짚어보는 작업이 되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한 기술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떤 계정을 지울지, 어떤 데이터를 백업할지가 아니라, "이 기록은 누군가가 보아도 괜찮을까?", 그리고 "나는 죽은 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생각보다 깊고 무거웠다.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내 흔적들이 온라인 공간 곳곳에 남아 있었고, 그것들은 곧 내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 같았다.

인스타그램에는 밝은 모습의 나만 존재하는 줄 알았지만, 오래된 댓글 속에는 충동적으로 남긴 말들도 있었다. 블로그에는 고민을 털어놓던 글들이 삭제되지 않은 채 여전히 검색되고 있었고, 메모 앱에는 쓰다 만 일기와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기록들은 모두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지만,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하나하나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디지털 자화상 같았다.

정리를 하다 보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어떤 콘텐츠는 숨기고 싶고, 어떤 기록은 남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기준은 단순히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누군가는 내가 쓴 평범한 문장 하나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오해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디지털 유산 정리는 결국 내가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지를 나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각 계정에 대한 메모를 따로 만들었다. 이 계정은 유지하고, 이 데이터는 삭제하며, 이 폴더는 가족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백업해 두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디지털 유언장에 ‘이 계정은 누군가가 보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메모를 짧게 남겨두었다. 디지털 유산은 결국 내가 떠난 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나의 버전'을 고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늘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정의는 삶의 끝에서야 또렷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그 마지막 정의를 스스로 정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나의 계정, 하나의 파일, 하나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남겨질 사람을 위한 디지털 유산 정리, 살아 있는 내가 해야 할 마지막 배려

디지털 유산 정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내 계정과 데이터는 그대로 남을 것이고, 그로 인해 가족이 혼란을 겪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사진 하나, 메모 하나에도 나의 감정이 담겨 있고, 이메일, 소셜미디어, 클라우드에 남은 콘텐츠들은 고스란히 내 삶의 흔적이자 디지털 자산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대부분의 중요한 기록을 온라인 공간에 남긴다. 사진, 영상, 일정, 건강 기록, 금융 내역은 물론이고, 구독 서비스, 쇼핑 이력, 이메일, 클라우드 문서까지 모두 디지털 계정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대한 접근 권한은 본인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이 사망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잠금 해제나 계정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구글, 애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은 생전에 별도 설정이 없다면 유족에게 계정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가족들은 사진 하나, 중요한 메모 하나를 복구하지 못한 채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간다. 디지털 유산은 실체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남겨진 사람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지금, 스스로의 계정과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주요 계정 목록을 정리한 것이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이메일 주소, 계정 종류, 로그인 주소, 계정 사용 여부를 항목별로 정리하고, 삭제할 계정과 유지할 계정, 백업이 필요한 항목을 구분했다. 이렇게 목록을 만들고 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훨씬 명확해졌다.

다음으로는 사후 자동 전달 기능을 설정했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활용해 계정이 일정 기간 이상 비활성화되면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가 전달되도록 설정했다. 애플의 경우 디지털 유산 연락처(Digital Legacy Contact) 기능을 이용해 아이클라우드, 메모, 사진, 메일 등의 정보를 사후에 열람할 수 있도록 가족을 지정했다. 이 설정은 매우 간단하고 빠르며, 생전 단 몇 분만 투자해두면 사망 이후 가족의 정보 접근이 법적 절차 없이도 가능해진다.

또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 전환 기능을 제공한다. 사망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증빙 자료와 함께 요청하면 해당 계정은 '추모 중' 상태로 전환되어 타인이 접근하거나 해킹할 수 없게 되며, 고인의 콘텐츠는 그대로 보존된다. 계정 삭제도 가능하지만, 가족이 선택할 수 있도록 추모 전환 및 삭제 요청 방법, 링크, 필요한 서류 목록을 하나의 문서로 정리해두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이 모든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정리한 계정 목록, 설정 방법, 백업 위치, 접근 권한 등을 담은 요약본 파일을 암호화해 USB와 클라우드 양쪽에 저장하고, 가족에게 해당 위치와 비밀번호를 알려두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삶을 더 깊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다

우리는 매일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기고, SNS에 글을 올린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인터넷 속에는 여전히 ‘나’라는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들은 내가 죽은 후에도 그대로 존재하며, 정리되지 않으면 가족에게 혼란이나 부담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유산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증거다. 사진, 영상, 메일, 블로그, 유튜브 채널, 구독 서비스, 클라우드 문서까지 모두 디지털 자산이다. 이들을 정리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적인 작업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묻는 과정이다. 나는 지금, 사용 중인 계정을 정리하고,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와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기능을 설정했다. 가족에게 필요한 계정 정보는 별도로 문서로 남겼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을 더 진지하게, 더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다. 그 준비는 어렵지 않다. 단 하나의 계정, 하나의 사진, 하나의 메모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