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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악성 댓글과 모욕 문제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모든 디지털 흔적이 고귀한 유산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고인의 SNS 게시물, 블로그 글, 영상 콘텐츠 등이 공개된 채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악성 댓글이나 조롱, 모욕적인 표현이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달릴 경우 이 기록은 유산이 아니라 유해(有害)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공간의 문제는 고인의 명예뿐 아니라 남겨진 유족의 정신적 고통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유산이 어떻게 관리되지 않으면 유해가 될 수 있는가? 이 글은 그 사회적 위험성과 제도적 허점을 짚는다.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모욕문제

디지털 유산으로 남은 게시물, 공개된 흔적의 양면성

사망자의 온라인 활동은 보통 유족이나 팬들에 의해 디지털 유산으로 간주된다. 생전에 작성한 SNS 글, 유튜브 영상, 커뮤니티 게시글 등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흔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게시물들이 공개 상태로 유지될 경우 그 흔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악의적인 타인의 접근 또한 허용된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가진 디지털 유산이 된다.

특히 고인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인물일 경우 그가 생전에 작성한 글이나 발언 하나하나가 사망 이후에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일부 이용자들은 고인의 게시물에 악성 댓글을 달거나 조롱하는 방식으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기도 하고 유족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악성 댓글이 만들어내는 2차 사망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온라인에 남겨진 디지털 유산은 계속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인의 SNS 게시물, 블로그 글, 유튜브 영상, 커뮤니티 글 등은 여전히 검색되고 노출되며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 소비된다. 문제는 이 소비가 단순한 감상이나 추모를 넘어서 조롱과 혐오, 악의적 비방의 도구로 전락할 때 발생한다. 사망자에 대한 악성 댓글은 단순히 고인을 향한 무례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생을 마감한 이가 다시 한 번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하는 과정이다. 생전에 했던 발언, 남겼던 글, 영상 속 표정 하나까지 모든 것이 왜곡과 비난의 소재가 된다면 고인의 디지털 유산은 더 이상 기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후에도 살아남은 공격의 현장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을 많은 전문가들은 ‘2차 사망’이라고 표현한다.
첫 번째 죽음은 신체의 죽음이고 두 번째 죽음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멸, 즉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인격 말살을 의미한다. 고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왜곡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조롱당할 때 그 사람은 사회 속에서 두 번 지워지는 셈이다.

이런 악성 댓글은 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족과 지인들은 그 댓글 하나하나를 통해 또 한 번의 죽음을 목격하는 고통을 겪는다.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온라인상에서 이를 일일이 대응하거나 삭제할 수 없는 무력감과 상실감 속에서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더 나아가, 악성 댓글은 고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사망 이후 남겨진 이들을 향한 비언어적 공격이 되기도 한다. 이는 슬픔을 겪고 있는 유족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반복 유발하는 폭력이 된다. 결국 악성 댓글이 만들어내는 2차 사망은 단지 온라인상의 일탈이나 익명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명예로운 기록이 아닌 혐오의 컨텐츠로 바꾸고 남은 가족을 정서적으로 다시 고립시키는 사회적 문제이자 디지털 윤리의 실패다.

디지털 유산의 방치가 초래하는 명예훼손 문제

고인의 게시물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조롱은 사후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현행법상 사망자도 일정 부분 명예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유족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표현에 대해 민사적 대응이나 형사 고소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망자의 계정에 대한 관리 권한이 명확하지 않고 플랫폼 측에서도 사망자 관련 콘텐츠에 대해 명확한 조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플랫폼은 고인의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 요청을 받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복잡하고, 처리가 지연될 경우 모욕적인 콘텐츠가 계속 방치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유산은 보호되지 않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공격하는 문장들은 영구히 남을 수 있다. 이는 명백한 인격권 침해이며, 유산이 유해로 변질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 유산 보호를 위한 제도적·사회적 대응의 필요성

디지털 유산이 더 이상 유해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 장치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사망자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기준을 강화하고 악성 댓글 작성자에 대한 처벌 기준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사망자에 대한 모욕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그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은 사망자 계정에 대해 자동 ‘비공개 전환’ 혹은 ‘추모 모드’ 설정 기능을 마련해야 한다. 유족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콘텐츠를 보호할 수 있는 기본적인 보호 절차가 내장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사망자에 대한 조롱, 풍자, 공격은 단지 개인 의견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윤리 기준을 시험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특히 공공 온라인 공간에서 사망자를 언급할 때는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는 죽음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흔적이자,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다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삶을 담고 있는 중요한 기록이지만 그 관리와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흔적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고인의 게시물이 공개된 상태로 남아 있을 경우 그것은 유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격받을 수 있는 약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유산이 진정한 유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록의 의미를 해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유족과 고인의 명예를 함께 지켜주는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