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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은둔형 가족 구성원의 디지털 유산, 접근조차 어려운 계정들

사회적 고립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 일부 가족 구성원은 가족과의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흔히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이들은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도 연락이 드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디지털 흔적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메일, 클라우드, SNS, 가상자산 등 수많은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삶을 담고 있지만, 유족은 그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거나 접근 권한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정보의 소유권과 접근권 사이의 갈등은, 은둔형 가족 구성원의 사례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은둔형 가족 디지털유산

은둔형 가족 구성원이 남기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유산’

은둔형 가족 구성원은 대개 가족과의 연락을 최소화하고,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들은 SNS를 활발히 운영하지 않거나, 가명을 사용하여 정체를 감추는 경우도 많다. 클라우드, 웹하드, 메신저, 블로그 등에서 활동한 흔적은 외부에서 거의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은 사망 이후 유족이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접근 단절로 이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유족이 고인의 온라인 계정 존재 여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확한 계정명이나 이메일 주소조차 파악할 수 없다면, 플랫폼 측에 요청할 근거도 없다. 설령 계정이 추정되더라도 비밀번호나 2차 인증 수단이 없으면 접근이 불가능하다.

 

디지털 유산 접근의 현실적 제약

디지털 유산은 고인이 생전에 사용한 이메일, 클라우드, SNS 계정, 온라인 금융 자산 등을 포함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자산에 유족이 접근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개인정보 보호 정책에 따라 제3자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며, 설령 가족이라 하더라도 비밀번호나 2단계 인증 수단이 없으면 계정에 접근할 수 없다. 사망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도 계정 소유자가 사전에 위임 설정을 해두지 않았다면 플랫폼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은둔형 가족 구성원의 경우, 어떤 계정을 사용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은 디지털 유산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영구적으로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감정적 손실까지 더해지는 디지털 유산의 상실

디지털 유산은 단지 기술적 자산이나 경제적 가치를 지닌 데이터의 집합체가 아니다. 고인의 일기처럼 남겨진 블로그, 일상을 담은 사진, 가족과 나눈 이메일, 의미 있는 댓글 하나까지도 유족에게는 고인을 기억하고 감정을 연결할 수 있는 소중한 흔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유산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은 단순한 정보 상실을 넘어선 감정적 손실로 이어진다.

특히 생전에 소통이 단절되었던 은둔형 가족 구성원의 경우, 유족은 고인과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디지털 흔적에서 찾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고인의 계정에 접근할 수 없을 때, 유족은 무언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큰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는 고인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고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상실감, 그리고 기억조차 되새길 수 없다는 허탈감으로 이어진다.

또한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성향, 생각, 삶의 흔적이 담긴 매우 개인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유족은 그것을 통해 고인의 내면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자 한다. 그러나 접근조차 할 수 없다면, 유족은 고인을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채 감정적 정리 과정에서도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인 정서적 공백이나 미해결된 심리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상담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발전하는 사례도 있다.

 

위임 없이 남겨진 디지털 유산의 법적 사각지대

디지털 유산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정리하고 상속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여전히 미비하다. 특히 고인이 생전에 디지털 자산에 대한 위임장이나 처리 지침을 남기지 않은 경우 그 유산은 사실상 누구도 접근하거나 정리할 수 없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현행법상 물리적 유산이나 금융 자산은 상속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상속인이 법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메일, 클라우드, SNS, 온라인 구독 서비스, 가상자산 등으로 구성된 디지털 유산은 대부분 플랫폼의 내부 정책에 따라 관리된다. 이 정책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고인의 계정에 대한 위임이나 사전 지정이 없을 경우 가족이라 하더라도 접근이 사실상 차단된다.

문제는 고인의 의사가 담긴 디지털 정보가 보호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정작 유족 입장에서는 필요한 정보나 정서적 유산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인이 사용하던 구글 드라이브에 중요한 가족 문서가 남아 있을 수 있고, SNS에는 마지막 일상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밀번호는 물론, 2단계 인증 정보 없이 계정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공백에서 비롯된 문제다. 디지털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은 오로지 이용자의 생전 동의나 설정 여부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은둔형 고인이나 사전 정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유족은 고인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남겨진 유산을 법적으로도 회수하지 못한 채 방치하게 된다.

이처럼 위임 없이 남겨진 디지털 유산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유족의 정당한 상속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명확한 입법과 제도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은둔형 가족을 위한 디지털 유산 제도 개선의 필요성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첫째, 사용자가 생전에 본인의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명시할 수 있는 ‘디지털 유언장’ 시스템을 법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은둔형 가족 구성원처럼 사전 위임이 어려운 사례에 대해서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유족에게 접근권을 부여할 수 있는 별도의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족 간에 생전 디지털 자산에 대한 대화와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인 캠페인이나 교육도 중요하다.
‘디지털 죽음’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낯설고 사적인 주제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