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이후의 디지털 유산: 남겨진 기록은 상속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의 관계는 끝나지만, 디지털 기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때 부부였던 두 사람이 이혼으로 관계를 정리한 이후에도, 공동 계정, 함께 찍은 사진, 주고받은 이메일, 구글 캘린더 일정, 심지어는 공동 운영하던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까지 여전히 온라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디지털 흔적은 사적인 기억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거나, 정서적 고통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그리고 더 나아가, 일부 콘텐츠는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며, "이혼 후에도 디지털 기록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복잡한 질문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이혼 후에 남겨진 디지털 콘텐츠와 계정이 갖는 의미,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과거의 흔적을 넘어서 법적·경제적·감정적 유산으로 변모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실제로 관계가 끝난 이후 디지털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제시한다.
관계는 끝나도 디지털 유산은 계속 남는다
사랑이 끝나면 물리적인 공간은 정리된다. 함께 살던 집을 비우고, 공동 명의로 쓰던 자동차를 정리하고, 각자의 금융 계좌를 분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리가 늦춰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구글 포토에 자동으로 동기화된 수천 장의 사진, 아이클라우드에 남겨진 가족 일정, 카카오톡 대화방, 인스타그램 태그, 공유 중이던 넷플릭스 계정까지 하나하나 직접 찾아서 정리하지 않으면 계속 남아 있는 데이터들이다.
특히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콘텐츠를 공동 운영했던 경우엔 더 복잡하다. 누가 글을 더 많이 썼는지, 누가 편집을 했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창작 권리 문제와 수익 배분 이슈까지 얽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디지털 흔적은 관계를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대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적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는 결국 심리적 불편함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유산은 ‘정보’이자 ‘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기록을 단순한 ‘기억’이나 ‘추억’으로 생각하지만, 오늘날의 디지털 콘텐츠는 정보이자 자산이다. 특히 수익을 창출하거나 제3자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는 더 이상 감정의 문제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부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이 이혼 후에도 계속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우, 그 수익은 법적으로 나눠야 하는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유튜브 채널, 블로그 수익, SNS 팔로워 수 자체가 자산 가치로 평가되어 이혼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된 사례도 있다.
디지털 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명확한 가치와 권리가 존재한다. 특히 애드센스 계정, NFT 작품, 암호화폐, 디지털 구독 서비스 등은 금전적 가치를 갖는 만큼, 이혼 당시의 명의 정리와 접근 권한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버리면, 남겨진 계정이나 콘텐츠가 ‘상속’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이혼 후에도 디지털 유산은 미래의 가족 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감정이 담긴 콘텐츠, 삭제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
이혼 후 가장 큰 갈등 지점 중 하나는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사진, 영상, 블로그 콘텐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어떤 사람은 모든 기록을 지우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위해 기억을 남기길 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여행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SNS나 블로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 한쪽이 삭제를 요구하고 다른 쪽은 ‘개인 콘텐츠’라며 거부할 수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건 콘텐츠의 소유권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생활 보호 사이의 충돌이다. 만약 공동으로 작성된 블로그 글에
이혼 상대방의 실명이 포함되어 있거나 감정적인 표현이 남아 있다면,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혼 후 상대방과 관련된 사진이나 게시물을 그대로 두었다가 삭제 청구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 후에는 단순히 ‘지울지 말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누구와 공유하며, 어떤 기록은 접근을 제한할 것인지
감정이 가라앉은 시점에 명확한 기준을 두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계 종료 이후,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는 5가지 실천 방법
이혼은 법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관계를 ‘완료’하기 위한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은 이혼 후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오해나 법적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들이다.
① 모든 계정 정리 리스트 만들기
이메일, 클라우드, 블로그, SNS, 콘텐츠 플랫폼 등 서로 연결돼 있던 계정을 항목별로 정리하고 접근 권한, 로그인 정보, 명의 변경 여부를 확인한다.
② 구글 및 애플 계정 분리하기
특히 아이폰, 구글 드라이브 등은 사진·캘린더·연락처가 동기화되어 있으므로 공유 계정이라면 즉시 분리하고 백업 후 독립 계정으로 옮겨야 한다.
③ 콘텐츠 정리 기준 합의하기
삭제, 비공개 전환, 재편집, 보관 등 어떤 콘텐츠는 지우고 어떤 콘텐츠는 남길지를 상호 합의 하에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엔 자녀에게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지 함께 결정해야 한다.
④ 수익 계정 처리하기
애드센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광고, 블로그 수익, 디지털 판매 플랫폼 등의 수익 정산 및 계정 명의를 사전에 협의하고 분리한다.
⑤ 디지털 유산 위임 및 차단 설정
사후 계정 처리를 고려해, 각 플랫폼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유산 관리인’, ‘사망자 처리 설정’ 등을 이혼 이후에도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설정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계 종료 이후에도 계정이 타인에게 노출되거나 의도치 않게 남겨지지 않도록 사전 대비할 수 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 디지털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혼이라는 절차는 법적으로는 명확할 수 있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종종 모호하고, 오래 남는다. 무심코 남겨둔 사진 한 장, 접속하지 않은 계정 하나가 몇 년 뒤 예상치 못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거나 법적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실제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이혼 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정리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남은 데이터가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수익이 불공정하게 흐르지 않도록, 아이에게 혼란이 전가되지 않도록 지금 정리하고, 지금 대화하고, 지금 삭제하거나 공유해야 한다.
이제 디지털 유산은 사망 이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의 종료 이후에도 충분히 고려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현실적이고 중요한 삶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