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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나만의 디지털 유산을 정리한 실제 경험과 느낀 점

누군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사람의 SNS 계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프로필 사진은 바뀌지 않았고, 마지막 게시물에는 수많은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니?”, “네가 너무 그립다.” 같은 말들. 한편으로는 따뜻해 보였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낯설었다. 죽은 사람이 여전히 ‘온라인에 존재하는’ 이 기묘한 현실이, 나에게 묘한 불편함을 남겼다.

이후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수많은 계정과 기록은 어떻게 될까?”
클라우드에 저장된 수천 장의 사진, 구글 드라이브에 남겨둔 문서, 수년간 쌓인 메모들, 자동 결제가 계속되는 구독 서비스, 여러 사이트에 흩어진 아이디와 비밀번호들. 살아 있는 동안 무심코 남겨온 이 흔적들이, 죽음 이후에는 **‘디지털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지금 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디지털 유산 정리한 경험과 느낀점

 

디지털 유산 정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정리를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가족이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가족은 내 계정에 접근할 수 있을까? 내 사진을 복원할 수 있을까? 내 이름으로 결제되고 있는 서비스들을 누가, 어떻게 해지할 수 있을까?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가족이 고생하게 될 것이고, 어떤 데이터는 열람하지 못한 채 사라질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불안했고, 동시에 미안했다. 내가 남긴 흔적들이 나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이나 상처가 된다면 그건 책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내가 가진 계정들을 모두 목록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구글 시트에 이메일 주소별로 가입된 서비스, 사용 여부, 자동결제 유무, 정리 방침 등을 정리했다.
정리 대상은 생각보다 많았다. 한 번 쓰고 방치된 쇼핑몰 계정, 테스트 삼아 만든 블로그, 백업 없이 남겨둔 메모들.
정리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기록은 남기고 싶고, 어떤 기록은 지우고 싶은지’ 판단하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되짚는 과정이기도 했다.

 

디지털 유산 실제 정리 방법과 도중의 고민들

 

디지털 유산을 정리한다고 마음먹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사용 중인 계정 전체를 목록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메일, SNS, 클라우드 서비스, 온라인 쇼핑몰, 블로그, 금융 앱까지 생각보다 많은 계정이 흩어져 있었고, 그중 절반은 나조차도 잊고 있던 것들이었다. 구글 시트를 열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계정은 계속 사용할 예정인지, 사망 후 삭제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에게 넘길 것인지 항목을 나눴다. 이 작업만으로도 ‘내가 살아온 디지털 흔적이 얼마나 방대하고 무질서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기술적인 설정도 병행했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이용해 계정이 장기간 사용되지 않으면 지정한 가족에게 내 일부 데이터(예: 사진, 메일, 문서)가 공유되도록 설정했다.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기능을 통해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과 메모, 연락처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가족 한 명을 지정했다. 이처럼 플랫폼이 제공하는 사후 관리 도구는 의외로 잘 갖춰져 있었고, 대부분 몇 분 만에 설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감정적인 부분이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메모, 사진, 문서와 마주하게 된다. 어떤 메모는 고백처럼 솔직했고, 어떤 사진은 당시의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찍은 것이었다. 이걸 남겨야 할까, 지워야 할까? 누군가가 나를 이 기록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특히 메모 앱은 내가 가장 신중하게 접근한 공간이었다. 수년간 기록해온 짧은 생각들, 일기, 보내지 못한 메시지, 감정의 파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중 일부는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었다. 결국 나는 메모들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남기고 싶은 기록은 따로 폴더에 저장, 가족이 보지 않아도 되는 기록은 ‘비공개’ 표시를 하거나 삭제했다. 그 작업은 마치 나 자신을 다시 정리하고 정제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사진 정리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일 수 있는 사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사진은 별도 앨범으로 만들었고, 중복되거나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진들은 과감히 정리했다. 정리하는 손끝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많이 떠오른 건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단순히 데이터를 분류하는 작업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게 할지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디지털 유산 정리를 마친 후 느낀 변화

 

디지털 유산 정리를 끝냈을 때, 예상보다 훨씬 큰 감정의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두었다는 실용적인 안도감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정리를 마치고 나니 생각보다 깊은 심리적 안정감이 나를 감쌌다.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마음의 평온함이었다. 언제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 내가 갑자기 떠났을 때 가족이 당황하거나 곤란해할 수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이건 꼭 남기고 싶다’, ‘이건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반영했다는 점에서, 삶의 마지막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은 단순한 통제감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자세에서 비롯된 자존감이었다.

또 하나 크게 달라진 점은, 현재를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진을 정리하고 오래된 메모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때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이 사람과는 왜 멀어졌지?’, ‘이 말은 지금 다시 읽어도 위로가 된다’ 같은 소소한 감정들이 나를 움직였다. 그 기록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분명히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었고,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정리를 마친 후에는 오히려 디지털 기록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저장하던 메모도 지금은 한 번 더 생각하고 작성하게 되었고, 감정적으로 휘갈겨 썼던 글도 되도록이면 의미 있게 정리해두려 노력하고 있다. “이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조금 더 성찰적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대화였다. 정리를 마친 뒤, 문서 한 장을 가족에게 건넸다. “혹시 내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파일 안에 모든 계정과 설정이 정리돼 있어. 너무 자세히 보지 않아도 돼. 그냥 기억만 해줘.” 그 말에 가족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걸 해놨다는 게 참 너답다. 고마워.” 그 순간 나는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디지털 유산을 정리한다는 건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의식하며 살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그리고 그 준비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다.